덕수궁은 대한민국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입니다. 조선 초기 세조가 가장 가엽게 여긴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위해 개인 사저로 마련한 것이 이 궁궐의 기원입니다. 이후 한씨의 차남 자산군이 궁에 들어가게 되어 장남 월산대군이 물려받았고, 선조 이후 세조 때까지 궁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이 궁궐을 임시로 왕의 거처로 쓰면서 궁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광해군 때에는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붙여주었으며, 인조 때에는 대교문, 궐조문 등의 건물이 중건되었습니다. 1904년 큰 화재로 인해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이듬해에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이후 대한문이라는 궁궐의 대문 이름도 바뀌었고, 1907년 순종이 즉위 후 궁호가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오아시스길은 중앙아시아의 건조 지대와 반사막 지역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들을 연결하여 동서로 이어진 길로, 오아시스는 사막이나 건조 지대의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작은 공간으로서 물과 수목이 자라며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오아시스들은 교역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문물이 집결되고 교통이 발달되어 왔으며, 오아시스길은 이러한 오아시스들을 연결하여 동서교류의 주요 통로로 이용되었다. 초원로가 이용되었던 기원전 6세기 이후 오아시스길이 중요한 교통로로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138~126년에는 중국의 장건이 파견된 사절단이 오아시스길을 이용하여 대월지에 이르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경희궁(慶熙宮)은 서울특별시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광해군 9년(1617년)에 건립한 이후, 10대에 걸쳐 임금이 정사를 보았던 궁궐이다. 서울시에 있는 5대 궁궐 중에서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으며, 새문안 대궐, 새문동 대궐, 아주개 대궐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의 이궁(離宮)으로, 경운궁(덕수궁)과 홍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지 7만 2천 8백 평에 정전, 동궁, 침전, 별당을 비롯해서 모두 98채의 건물이 들어섰던 경희궁은 경복궁, 창경궁과 함께 조선왕조의 3대궁으로 꼽힐 만큼 큰 궁궐이었으며 본래는 100여 동이 넘는 전각들이 있었다. 그러나 5대궁 가운데 가장 철저히 파괴된 궁으로서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에 의해 몇 채의 전각들을 제외하곤 전부 훼철됐고, 그나마 남아있던 부지 또한 일제강점기에 축소되어 현재 원 상태로 남아있는 건물은 정문이었던 흥화문과 정전이었던 숭정전, 그리고 후원의 정자였던 황학정까지 세 채에 불과하다. 그나마 초석과 기단이 남아 있고, 뒤쪽에는 울창한 수림이 잘 보전돼 있어 궁궐의 자취를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히포드롬 광장(Hippodrome)은 터키의 이스탄불(Istanbul)에 위치한 역사적인 광장입니다. 이 광장은 로마 시대에 경마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궁전과 대표적인 건물들이 건설되어 현재까지도 이슬람문화의 중심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히포드롬 광장은 오래된 건물과 명물들이 많이 위치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옛 로마 경마장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Obelisk)와 브로니즈(Obelisk of Theodosius)입니다. 이 두 개의 돌기둥은 각각 약 3500년 전에 이집트에서 가져와졌으며, 경주장에서 이끌어져 현재 히포드롬 광장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광장에는 오스만 제국의 최대 궁전 중 하나인 투르베키 팰리스(Topkapi Palace)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 궁전은 15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의 권력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히포드롬 광장에는 여러 유적과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슬람문화의 중심지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과거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고대 그리스의 비잔티움 땅에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항구가 좋았기 때문에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였으며, 30~40만명을 헤아리는 기독교 세계 최대 도시였다. 강력한 성벽으로도 유명했지만,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어 쇠퇴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이후 이스탄불의 수도가 되었다. 현재에도 동방 정교회 및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이스탄불에 두고 있다.
테살로니카는 비잔틴제국의 제2의 도시로, 현재의 그리스 북부 지방에 위치합니다. 고대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으며,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다양한 제국들이 지배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비잔틴제국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발전하였으며, 경제적인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에 비해 인구는 적어 약 2만명에서 3만명 사이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콘스탄티노플만큼 국제도시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예술과 문화에서도 발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밀라노(Milano)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유럽에서도 중요한 도시 중 하나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밀라노 대성당(두오모)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로 유명한 밀라노는 또한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밀라노칙령은 313년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 간의 밀라노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발표된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선교와 신앙을 자유롭게 실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이후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 종교가 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밀라노칙령은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출발하여 타슈켄트와 사마르칸드를 거쳐 동서남북 십자로상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발흐(Balkh)와 페샤와르(Peshawar, 즉 Gandhara)를 지나 인더스 강 유역을 따라 중인도 서해안의 바루가자(현재 Surat)까지 줄곧 남하하는 길이다. 이 길은 동서남북 교통로의 중심 교차점에 자리하고 있어 동서문명교류와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기원전 2000년에 동부 유목 아리아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다. 불교는 이 길을 따라 북상한 다음 중앙 아시아를 거쳐 동방에 전파되었으며, 법현, 현장 같은 많은 수법승이 이 길로 천축(인도)에가서 수도하였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약 4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는 샌프란시스코이지만,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영화, 방송, 음악 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하며, 세계적으로도 대표적인 교통 허브 중 하나입니다. 또한, 남쪽에는 태평양, 북쪽에는 산악지대가 위치하여 기후와 지형이 다양합니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의 다문화도시로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합니다. 도시 내에는 미술관, 박물관, 공원, 해변 등 다양한 관광지와 문화시설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합니다. 또한,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 비버리 힐즈 등은 전 세계인들에게 매우 유명한 지역으로, 영화와 연예산업의 중심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산비탈레 성당( Basilica of San Vitale)은 이탈리아 라벤나에 위치한 대표적인 비잔틴 예술 건축물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성당은 526년부터 547년 사이에 건설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동고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에서 건설되었습니다. 산비탈레 성당은 아름다운 체스터톤 모자이크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그의 왕비 Theodora의 황제 포상 장면을 비롯한 많은 모자이크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 중에서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자이크는 자주빛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은 황제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모자이크는 중세 예술의 미학을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히며, 중세 유럽 예술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입니다. 산비탈레 성당은 라벤나의 비잔틴 예술과 문화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건축물 중 하나로, 중세 유럽의 예술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당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비잔틴 예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