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 등극하면서 사후 자신을 지켜줄 친위군단으로 흙으로 제작해 만든 테라코타 병사와 말, 즉 병마용을 만들었다. 기원전 228년 진시황제에 의해 태어난 병마용 병사들의 임무는 진시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진시황제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40년의 세월을 거쳐 테라코타 군대가 완성되었고 중국 테라코타 병사들이 묻힌 병마용갱은 1974년 한 중국인 농부에 의해 중국 산시성 시안시 린퉁 구에 있는 진시황릉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여러개의 갱도가 발견되었고 아직도 발굴중이다.
석굴암은 대한민국 경주시에 위치한 석굴(石窟)로, 신라 시대 김대성의 건축과 조형미술이 반영된 유일한 인공 화강암 동굴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로마의 판데온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교역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의 판테온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중앙의 대청마루(大廳麻樓)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로마의 판테온과 유사한데, 판테온도 중앙에 대청마루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주 석굴암이 로마의 판테온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에 대한 학계적인 입증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경주 석굴암은 중국의 건축양식과 유럽의 건축양식 등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의 판테온만을 따라서 형성된 것은 아니다.
돈황석굴에 존재하는 삼토(三兎)문양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토는 우주의 질서와 평화, 번영을 상징하는 중요한 동물. 이에 대해 교합법(巧合法)은 예술가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창조된 작품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자연에서 발견한 나무 조각이나 돌멩이를 이용하여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교합법의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돈황석굴의 삼토문양을 교합법으로 처리하여 응용한 작품은 예술가가 우연히 발견한 형태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작품은 예술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발휘된 결과물로, 삼토문양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일 수도 있다.
둔황석굴(莫高窟, Mogao Caves)은 중국 간쑤(甘肅)성 둔황(敦煌)에 위치한 유명한 천불동으로, 중국 불교문화의 보고로 간주됩니다. 둔황석굴은 전체적으로 1,000여 개의 작은 동굴과 대규모의 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원전 4세기부터 14세기까지의 불교 예술 유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둔황석굴의 석실은 천장과 벽면에 신비로운 조각과 그림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중국 민족 문화의 귀중한 유산 중 하나인 벽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둔황석굴은 중국 불교문화와 중국 예술사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둔황석굴은 1961년 중국의 전국 중요문화재 보호단위로 지정되었으며, 198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석굴은 중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기원전 6세기에 건립된 바이잔틴 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성당 내부의 장식과 예술 작품들은 중세 유럽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모스크로 전환되어 사용되었고, 1935년에는 튀르키에정부에 의해 박물관으로 전환되어 현재도 관광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야 소피아의 복잡한 역사는 537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금각만(Golden Horn)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교회(성당)를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이 건물은 거대한 돔 형태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자 건물이었다. 1204년 십자군 원정대가 도시를 급습했던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 수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 하에 있었다. 1453년 비잔틴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고, 성 소피아 성당 안에서 금요일 이슬람 기도회를 했다. 이후 곧 이 건물은 모스크로 개조됐다. 외관에 4개의 미나레트(이슬람 예배당에 설치되는 뾰족탑)가 추가됐고, 화려했던 기독교 상징물과 금 모자이크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글자판으로 덮였다. 수세기가 흐른 뒤 1934년 터키 세속주의 움직임 속에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오늘날 아야 소피아는 터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연간 37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이탈리아 베네토주 베네치아에 위치한 대성당으로, 비잔틴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산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과 인접해 있습니다. 원래는 두칼레 궁전에 소속된 성당이었지만, 1807년에 베네치아 대주교가 주교좌를 이곳으로 옮기며 바티칸 소유의 대성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대성당의 기본적인 골격은 1060년과 1100년 사이에 대부분 완성되었고, 이후에 추가적인 공사들은 대부분 대성당 건물을 장식하거나 더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돔으로 꾸며져 있으며, 성당을 덮고 있는 황금 모자이크를 만드는 데는 몇 세기나 걸렸습니다. 13세기에는 원래 돔 위에 철골로 새로운 돔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내부의 돔 공간 자체의 크기를 확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보면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낮게 느껴집니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아름다운 디자인과 황금 모자이크, 그리고 베네치아의 부와 명성으로 인해 11세기에 '황금 교회'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독창적인 방식으로 비잔틴 양식과 이슬람 양식을 섞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특징을 보였습니다.